ARTRAVEL TRIP.23
다섯 계절의 사랑
FALL IN LOVE
아직도 그때 일어났던 일들을 정확히 알 수 없다. 사랑의 경험이란 객관적, 중립적으로 축적된 기억이 아니다. 과잉의 감정이 투사된, 어찌 보면 모든 기억 중 가장 왜곡된 형태래야 정확하다. 나는 그때 화가 났고, 목말랐고, 그립거나 간절했다. 사랑의 추억은 가장 부정확한 경험적 서사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전에 볼 수 없던 것들을 몇 가지 알아채게 된다. 이를테면, 그때 내 마음이 향했던 게 정말 당신이었는지, 아니면 사랑에 빠졌다는 자기만족이었는지. 그때 나를 울게 했던 게 정말 당신이었는지, 아니면 당신 아니라 그 누구여도 결코 채울 수 없었던 내 안에 구멍이었는지. 내게 숨막혔던 게 실은 당신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는 것도.
그러니 이제 사랑에 대한 허무와 불신에 빠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모든 적나라한 허구 위에서 나는 다시 화를 내고, 목마르고, 간절하고 싶어진다. 고작 당신의 고요한 목소리에 반해, 당신 손의 온도 따위에 반해 다시 기다리고 싶어진다. 붉고 살이 데던 시절이 지나고 가을이 왔을까. 사랑이 망상의 반복인지, 아니면 이제야 말로 당신인지 또 한번 확인하고 싶어졌다.
목차
ART
014 여기 사랑이 지나가네
유럽
박상준
038 살롱, 인간을 연모한 카페들
SALON
편집부
050 그 사랑에 관한 몇 가지 가정들
파리, 뉴욕 & 런던
이민희
058 무늬의 가게
PATTERNS
편집부
지구사용설명서 - 홋카이도 편
070 Letter Form Hokkaido
안수향
090 홋카이도 온갖 백과사전
편집부
098 홋카이도行 여행인문학
편집부
TRAVEL
106 엄마와 나와 유럽
유럽
박진명
120 순전히, 순천
순천
한진석
138 브라쇼프, 새로운 출발
루마니아
양미석
150 지가 하는 게 사랑인 줄도 모르고
파키스탄
변종모